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효인황후 동씨 (문단 편집) == 정사 == 후한의 황족 해동정후 유장(劉萇)의 부인으로 '''실제 황후였던 적은 없다.''' 156년, [[영제(후한)|유굉]](영제)을 낳았고 168년 이전에 남편 유장이 죽어 유굉이 이미 해동정후를 이어받고 있었다. 168년, 영제가 즉위하자 남편 유장이 효인황으로 추촌되면서 그녀는 신원귀인으로 높여졌다. 당시는 [[환사황후 두씨]]가 선제인 [[환제(후한)|환제]]의 황후로서 황태후가 되어 임조칭제하면서 그 일족인 [[두무]] 등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아들 영제가 있는 낙양으로 와서 황태후 노릇을 할 수는 없었다. 두씨 일족이 전횡을 부리던 환관을 제거하려고 하다가 역공을 당하여 숙청되고 이를 지지하던 사인들도 [[당고의 금]]으로 몰락한 이후, 영제는 어머니와 외삼촌인 [[동총]]을 낙양으로 소환하였다. 영제는 어머니가 들어오자 효인황후라 높이고 궁호를 영락(永樂)으로 하며 태후로 예우하였다. 오래지않아 환사황후가 사망하자 효인황후는 조정 정치를 장악해 아들 영제에게 [[매관매직]]을 장려해서 부를 축척하고 조카 [[동중]]에게 권력을 부여했다. 효인황후는 유협([[헌제]])을 직접 길렀기 때문에 아들 영제에게 유변([[후소제(후한)|소제]]) 말고 유협을 황태자로 삼으라고 권했는데, 유변의 모친 하씨(후의 [[영사황후 하씨]])가 이를 원망했다. 영제가 후계자를 명시하지 않고 죽었고 [[건석]]이 유협을 즉위시키려는 계획이 실패하자 하씨와 [[하진(삼국지)|하진]]은 유변(소제)을 황제로 옹립했다. 효인황후+동중과 영사황후+하진은 권력 쟁탈을 벌였는데, 영사황후는 효인황후의 정치 참여를 번번히 저지하였다. 이에 분개한 효인황후는 "동중을 시켜 하진을 죽일 수 있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는데 이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영사황후는 하진에게 이를 알리고 조정의 여론을 움직여 영제 치세에 효인황후가 [[매관매직]]했던 내력과 그녀가 일개 제후의 부인이었지 정식 황후가 아니었다는 것을 명분으로 하간국으로 쫓아내고 하진이 군대로 동중을 압박해 동중이 자결하게 만들었다. 효인황후는 낙양에서 축출된 이후 마음의 병을 얻어 오래지 않아 죽었고 백성들은 하씨 일가를 탓했다. 이후 [[동탁]]이 효인황후를 핍박하여 쫓아낸 것이 고부간의 예를 거스른다는 것을 명분으로 영사황후와 소제를 제거하고 유협을 황제로 옹립하면서 효인황후의 숙원이 이루어졌다.[* 참고로 이런 동탁의 행보에는 동태후와 자신이 똑같은 동 씨여서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진위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몇몇 창작물에서 이런 이유룰 끼워넣을 정도로 곧잘 나오며, 심한 경우에는 아예 둘을 같은 혈족으로 묶기도 한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